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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철수 리” 소개

오늘은 다큐멘터리장르 영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프리 철수 리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영화명은 프리 철수 리입니다.
제작년도는 2022년이며 다큐멘터리물입니다.
프리 철수 리
개봉은 년 월 일입니다.

줄거리

2건의 살인, 10년의 재판,
“정말로 난, 살인자가 아닙니다!”
탕! 탕! 탕!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거리 한복판에서 중국인 갱단이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5일 후, 한 동양인 청년이 살인 용의자로 긴급 체포된다. 이름 ‘철수 리’, 21살의 한인 이민자였다. 동양인 외모를 구별 못하는 백인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철수는 곧장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폭력적인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대로 묻힐 뻔했던 사건은 한 기자의 심층 보도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한인 최초의 미국 주류 신문사 기자였던 이경원은 차이나타운 취재 중 우연히 이철수 사건을 접하고, 엉터리 재판 과정을 폭로한다. 이철수의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며 한인 이민 사회와 종교계가 들끓고, 재심을 요구하는 구명 운동이 시작된다. ‘프리 철수 리’ 운동이 아시안아메리칸 사회를 뒤흔들며 빠르게 번져가던 중, 교도소 안 이철수는 갱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 진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10년의 재판,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철수의 나머지 삶의 반전!
2023년,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고 충격적인 감동을 선사할, 당신의 인생 영화가 될 최고의 다큐멘터리!

캐스팅

  • 하줄리 / 감독

  • 이성민 / 감독

  • 이철수 / 주연

  • 이경원 / 주연

  • 유재건 / 주연

  • 랑코 야마다 / 주연

  • 제프 아다치 / 주연

  • 세바스찬 윤 / 주연

  • 김수현 / 스탭

  • 조소나 / 스탭

제작노트

[ About Movie ]

한국 이민사 중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이철수 사건’과
‘프리 철수 리’ 운동의 전모를 최초로 밝히다!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특별한 직업 없이 차이나타운을 떠돌던 한 동양인이 거리에서 벌어진 총격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12살에 엄마를 따라 이민 온 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영어도 서툴었던 21세의 한인 청년은 오해가 곧 풀릴 거라 믿었지만 뜻밖에도 종신형을 선고 받고 ‘검투사 학교’라 불릴 만큼 폭력적인 교도소에 수감된다. 1978년 미국 주류 언론사에 진출해 있던 유일한 한인, 이경원 기자가 이철수의 억울한 사연을 ‘새크라멘토 유니언’ 신문에 게재하면서 한인 사회에 큰 반향이 일어난다.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이철수 사건’의 재심을 주장하는 구명 운동이 시작되고, 운동은 곧 미국 내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로 확대됐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이철수가 동양인의 외모를 구분하지 못하는 백인 목격자들의 엉터리 증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에 공분을 느끼며 ‘프리 철수 리’ 운동에 참여했고, 1982년 결국 재심과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다. 
‘이철수 사건’은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을 보여주고, ‘프리 철수 리’ 운동은 미 사법부의 철옹성 같은 벽마저 무너뜨린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사례다. 한국 이민사는 물론 미국 내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미국 주류 사회에 의미 있는 사건은 아니기에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하줄리 감독과 이성민 감독이 ‘이철수 사건’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저널리스트 출신 감독들의 집요한 아카이빙과 감각적인 구성,
<미나리> 정이삭 감독, 스티븐 연 배우의 마음을 울리고
선댄스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뒤흔들다!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집요할 만큼 꼼꼼한 아카이빙! 온갖 흑백 및 컬러 사진과 영상, 편지, 인쇄된 신문, TV 뉴스 화면과 당사자들의 인터뷰로, 자그마치 10년간 이어졌던 사건과 재판의 과정은 물론 이철수의 삶 전체를 아우른다. 이 같은 형식이 가능했던 건 하줄리, 이성민 두 감독이 저널리스트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줄리 감독은 미국 내 아시안아메리칸 출판 잡지 중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코레암 저널 KoreaAm Journal’에서 10년 간 근무하며 편집장을 맡았었고, 이성민 감독은 LA를 기반으로 뉴욕타임즈, 알자지라 등 세계 언론사의 영상을 제작하는 감독이자 편집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왔다.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 연출에 의기투합한 후 두 사람은 저널리스트들답게 관련 자료들을 모으는 데 가장 힘을 썼다. 신문 기사나 TV 뉴스 영상 등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기록은 물론, ‘프리 철수 리’ 운동에 참여했던 변호사들과 활동가들을 수소문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까지 샅샅이 찾아냈다. 총 6년에 이르는 제작 과정 중 자료를 확보하고 영화 제작을 위한 저작권을 해결하는 데 절반 이상의 시간을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기록들을 모아 <프리 철수 리>를 완성했다. 다양한 자료를 단순히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감각적인 구성을 통해 극영화 못지 않은 속도감과 박진감을 만들어낸 데서도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두 감독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프리 철수 리>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반가워한 것은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인 2세 창작자들이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이민자들의 삶과 정서를 전세계와 공유한 정이삭 감독은 “이철수라는 한 남자를 그린 품위 있는 초상화 같은 영화다. 그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기리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영화 전체에 담겨있다.”고 감동을 표했다. 영화 <미나리>와 미국 드라마 <성난 사람들><워킹데드> 등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 역시 “이철수라는 진짜 비범한 인물을 담은 정말 범상치 않은 영화다. 아시안계 이민자, 아니 한 인간으로서 이 이야기에 정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받은 감동을 관객들이 그대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의 반응도 뜨겁다. 이미 선댄스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20여개 영화제에서 공식 초청을 받아 완성도를 인정받았으며, 토론토 릴 아시안 영화제에서는 베스트장편영화상, 시애틀 아시안아메리칸 영화제와 샌디에고 아시안 영화제 등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널리스트 출신 두 감독의 놀랍도록 꼼꼼한 아카이빙과 감각적인 연출로 할리우드 한인 2세 창작자들의 응원과 세계 유수 영화제의 인정을 받고 있는 영화 <프리 철수 리>! 6년 간의 긴 제작기간 동안 두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가장 큰 목표이자 소망이었던 한국 관객과의 만남에, 이제는 한국 관객들이 화답할 때다!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며 이상한 감동을 선사할 이철수의 삶,
당신의 인생 영화가 될 최고의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

<프리 철수 리>가 정말로 특별한 것은 이철수를 영웅으로, ‘프리 철수 리’ 운동을 미국 내 한인 사회를 비롯한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가장 빛나는 승리의 역사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철수의 나머지 이야기도 숨김 없이 기록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난 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과 마약에 빠지게 된 이철수의 삶은, 그의 구명에 인생을 걸었던 수많은 이들을 배반한 것처럼 영웅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들도 배반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걸 잃고 갱단에까지 입단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철수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화재 사건을 계기로 오로지 혼자의 힘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일궈내는 결말은, 보는 이들에게 이제껏 어떤 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하고 이상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관객들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진짜 영웅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던질 영화, 반드시 우리의 인생 영화가 될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절대 놓치지 말자!

‘이철수 사건’ 연표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입이택’ 총격 살인 사건 발생
1973년 6월 8일    21세의 한인 이민자 이철수, 용의자로 체포
1973년 6월 11일    백인 목격자 3명, 범인으로 이철수 지목
1974년 6월 19일    이철수, 1급 살인죄로 종신형 선고
1974년 7월 11일    이철수, ‘드우엘’ 교도소에 수감
1977년        ‘새크라멘토 유니언’의 이경원 기자, 이철수 사건 취재 착수
1977년 10월 8일    이철수, 교도소 안에서 백인 갱단원인 모리스 니덤 살인
1977년 11월    이경원 기자와 유재건 변호사, 교도소 안 이철수 첫 면회
1978년 1월        ‘이철수 구명위원회’ 조직
1978년 1월 30~31일    이경원 기자, ‘새크라멘토 유니언’ 톱기사로 이철수 사건 보도
1978년 5월        변호인단, ‘이철수 사건’ 재판 기록에서 증인 및 증거 은폐 흔적 발견
1979년 1월 15일    ‘드우엘 교도소 살인 사건’ 첫 공판
1979년 1월 19일    ‘이철수 사건’ 재심 청구 명령
1979년 5월 14일    이철수, 가중처벌로 ‘드우엘 교도소 살인 사건’에 대해 사형 선고
1982년 8월 2일    ‘이철수 사건’ 재심 재판 시작
1982년 8월 30일    차이나타운 총격 현장에서 진짜 범인을 목격했던 스티븐 로의 증언
1982년 9월 3일    ‘이철수 사건’ 재심 배심원단, 무죄 평결
1983년 3월 28일    이철수 석방
1983년 8월 24일    ‘드우엘 교도소 살인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나 가석방 적용 없는) 2급 살인죄 판결, 재판 종료

[ Production Note ]

#2014년, 이철수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싹튼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
2014년, ‘코레암 저널 KoreaAm Journal’의 편집장으로서 부고 기사 작성을 위해 이철수의 장례식장에 참석했던 하줄리 감독은 스승이자 언론계의 멘토인 이경원 기자가 크게 비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이철수의 삶과 ‘프리 철수 리’ 운동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떠올렸다. 하줄리 감독은 언론계 동료였던 이성민 감독에게 이 같은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두 감독은 이철수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하는 게 그들의 책임이자 사명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이철수 사망 1년 후, 이성민 감독의 정식 제안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이 시작됐다. 

#이철수를 아카이빙하다
이철수의 장례식 1년 후, 다큐멘터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두 감독은 남아있는 자료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이철수 사건’의 의미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소수자일뿐인 한인 이민자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남아있는 자료 역시 대부분 비디오 테이프 등 아날로그 포맷이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 작업이 시급했다. 
미국의 공식적인 기록 보관소를 다 뒤졌지만 한참 부족했던 소스들을 채워준 건 ‘이철수 사건’을 기억하고 ‘프리 철수 리’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당사자들이었다. 두 감독은 ‘코레암 저널’에서 일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이철수와 관련한 자료를 갖고 있을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한편 그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수많은 사진과 영상, 편지와 문서 등을 받았다. 
특히 ‘이철수 사건’의 부당함을 처음 세상에 폭로해 재심과 이철수의 석방을 이끌어내고, 이철수의 삶 마지막 순간까지 애정과 관심,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이경원 기자의 소장 자료가 큰 도움이 됐다. 이철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이철수 구명을 위해 인생의 진로를 바꿔 변호사의 길을 택하기도 했던 재미 일본인 3세 랑코 야마다 역시 이철수와 주고 받았던 편지와 당시 모금 운동을 위해 만들어 뒀던 사진 슬라이드 등 방대한 자료를 제공했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두 감독에게 감명 깊었던 건, 만났던 이들이 하나같이 ‘이철수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 모두가 마치 누군가가 나타나 사건을 제대로 기록해주리라 믿고 있었던 것처럼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적지 않은 사진과 문서, 영상 등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특정한 한두 명이 아닌 공동체의 힘으로 ‘프리 철수 리’ 운동을 일으키고 불가능해 보였던 이철수를 구명해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영화 <프리 철수 리>를 함께 완성해줬다. 하줄리, 이성민 두 감독은 ‘프리 철수 리’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공동체의 기억과 힘으로 영화 <프리 철수 리>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김수현 프로듀서와 한국 제작사의 합류 
흩어진 자료들을 모으고 저작권을 해결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제작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던 영화 <프리 철수 리>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수 킴, 한국 이름 김수현 프로듀서를 만나면서 급물살을 탔다. 다큐멘터리 <미드나잇 트래블러><헤일 카운티, 디스 모닝 디스 이브닝> 등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작들을 제작한 프로듀서이자 아카데미협회원인 그녀 역시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로 <프리 철수 리> 제작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제작 초기, 작업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하며 두 감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수현 프로듀서는 2017년부터 팀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김수현 프로듀서는 두 감독이 처음부터 목표했던 한국 개봉과 영화의 의미를 더욱 살리기 위해 한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사 필름소나의 조소나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택했다. 그렇게 <프리 철수 리>는 완성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내레이터 세바스찬 윤과의 운명적 만남 
이철수라는 한 인물의 삶 전체를 다루지만 (이미 고인이 된) 당사자인 이철수와의 만남 없이 영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하줄리, 이성민 두 감독과 제작진은 제작 과정에서 길을 잃는 순간마다, 만날 수 없는 이철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당신의 어떤 부분을 더 알기를 원하나요?’ ‘우리가 가려는 방향이 당신의 정의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있나요?’ 그럴 때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오는 것 같았다. 

내레이터를 맡아준 세바스찬 윤과의 만남 역시 그랬다. 영화의 대략적인 구성을 완성한 후에도 계속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두 감독은 이철수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사용하는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철수 본인의 목소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내레이터를 찾는 건 큰 숙제가 됐다. 그런 시점에서 세바스찬 윤과의 만남은 마치 운명과도 같았다. 2019년 미국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교도소 안에서 대학 학위를 취득하는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컬리지 비하인드 바> 토론회에 참석한 김수현 프로듀서는 패널로 참여한 한인 2세 세바스찬 윤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철수를 떠올리고 두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영화에 딱 맞는 내레이터를 찾은 것 같아!”

실제로 16세부터 12년간 교도소에 수감됐던 경험이 있는 세바스찬 윤은 단순히 목소리만 빌려준 게 아니라 이철수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 스크립트를 두 감독과 함께 썼다. 특히 감독들이 막연하게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교도소 안에서 이철수가 느꼈을 수치와 고통, 외로움과 고독감을 묘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세바스찬 윤 그 자신도 뼈저리게 느꼈던, 교도소에서 편지가 배분되는 순간의 적막에 대한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는 북받치는 감정 때문에 녹음이 여러 번 중단되기도 했다. 교도소에서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야 하는 트라우마를 감내하면서 기꺼이 이철수의 목소리가 되어준 세바스찬 윤 덕분에 <프리 철수 리>는 마치 이철수의 실제 목소리와 함께 하는 것 같은 생생함과 진정성을 갖게 됐다. 

#이철수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국에 온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
1952년 한국 전쟁 기간에 태어나 12살 때 엄마를 따라 한국을 떠나 미국 땅을 밟은 이철수는 이민자로서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와 함께 재심과 무죄 판결이라는 승리를 일궈낸 영웅이 됐으나 미국 정부로부터 사과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배상도 받지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났어야 할 20대를 지옥 같은 감옥에서 보낸 그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마약 중독에 빠졌고 18개월을 다시 교도소에 복역했으며, 방화 사건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얼굴을 잃을 만큼 심한 화상을 입은 후에는 10여년 간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받으며 은둔했다. 이철수는 2014년 62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미국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두 번 다시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하줄리, 이성민 두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 개봉을 목표로 했다. 타의로 한국을 떠난 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철수의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를 한국 관객들에게 정식으로 선보이는 것은 제작진에게 무엇보다도 큰 의미를 갖는다. 제작진은 이철수와 ‘이철수 사건’, ‘프리 철수 리’ 운동이 영화 <프리 철수 리>를 통해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되기를 소망한다. 인생에 닥쳐온 수많은 불운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 응원을 되새기며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영웅으로 남은 이철수가 한국인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수십 년 전 이철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의 인생을 구명했던 한국인들이 이철수의 완결된 이야기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또다른 이철수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또 한번의 움직임을 만들어가길 바라고 있다. 제작진의 간절한 바람이 10월 극장에서 관객들과의 만남으로 실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날씨 좋을때 가까운 극장에서 관람해 보시면 좋겠네요
오늘의 무비 소식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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